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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DATE2026.02.25
내 몸에 생기를 깨우는 봄나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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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생기를 깨우는 봄나물 이야기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습니다. 따듯한 햇볕이 안뜰에 제법 오래 머물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새들의 지저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들판에는 아직 빈손으로 서있는 나뭇가지들과 말라붙은 잎사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 틈을 비집고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내미는 푸릇한 새싹들이 봄의 전령처럼 다가올 계절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럴 땐 누구라도 핑계를 만들어 바깥으로 나가 봄바람을 만끽하고 싶어지는데요, 그래서 그 옛날 여인들은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나물 캐기를 핑계삼아 바깥 나들이에 나섰는지 모릅니다.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여인들의 품에는 초록을 입은 봄나물들이 가득합니다. 꽁꽁 언 땅을 뚫고 움을 틔운 생명의 기운만을 모아모아 고스란히 집으로 들여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봄은 우리들의 가정에, 몸에, 마음에 들어와 천천히 스밉니다. 우리가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계절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 중에도 우리 선조들은 특별히 봄에 나물을 챙겨먹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K-푸드의 높아진 위상과 함께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우리나라의 나물 문화와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지금 꼭 먹어야 할 봄나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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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에 진심인 한국인들

율곡 이이가 썼다고 알려진 <전원사시가(田園四時歌)> 봄 편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당대 최고 지성인이자 문장가였던 이이의 취미는 다름 아닌 나물 캐기. 특히 따스한 봄이 되면 소쿠리를 옆에 끼고 직접 나물 캐기에 나섰다니, 나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 직접 채취의 경험이 있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시와 표현력입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입 안의 맑은 향기를 삼키기 아깝다는 애정 어린 앓는 소리는 그가 얼마나 봄나물에 진심이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율곡 이이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에서 별다른 수고를 기울이지 않고도 알아서 지천으로 자라는 나물들을 가까이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물은 식량이 부족하던 시기를 견디게 해주는 고마운 식재료였습니다. 특히 긴 겨울 동안 추위를 견디며 잃었던 기력과 입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먹었던 봄나물은 우리 선조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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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되면 우리 선조들은 맛과 향이 강한 봄나물 5가지를 5가지 색깔로 조리한 ‘오신채(오신반)’를 먹었습니다. 입춘에 오신채를 먹는 풍습은 자극성 강한 채소 섭취를 통해 겨우내 잃었던 식욕과 입맛을 돋우고, 결핍된 비타민C를 보충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매년 1월 7일 아침 7가지 봄나물과 쌀을 넣고 끓인 죽 ‘나나쿠사가유(七草粥)’를 먹는 풍습이 있는데요, 한해 동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연말과 정월에 기름진 음식으로 피로해진 위를 쉬게 해주는 회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봄나물은 춥고 곤궁한 겨울을 지나온 인간의 몸을 리부트 해주는 자연의 보약과도 같았습니다.

한국인 DNA에 새겨진 봄나물


봄나물이 한국인에게 더 특별한 이유는 우리 건국신화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단군신화’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간청하니, 신인 환웅은 그들에게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고 버티기 미션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중도 포기해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100일을 인내한 곰은 인간 여인이 되어 우리의 시조가 되는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늘의 한반도 유입 시기가 통일신라 무렵인 점을 들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늘을 매운 맛 채소인 달래로 보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갔던 계절은 달래와 쑥이 지천에 자라던 봄이 아니었을까요? 건국신화에 마저 등장하는 봄나물이라면 한국인의 DNA에 봄나물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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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화에 쑥과 달래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 시대 주변에서 쉽게 채취해 먹을 수 있는 나물이었기 때문일 텐데요,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들은 가장 즐겨먹는 봄나물로 쑥과 달래, 냉이. 이 세가지를 꼽습니다. 봄나물 3대장으로 불리는 이 나물들은 제각기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조리법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뿌리까지 먹는 냉이는 언 땅 속에서 영양분을 응축하며 자랐기 때문에 잎의 향은 물론 뿌리의 단맛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비타민 함량이 풍부해 봄철 춘곤증에 시달리는 분들이라면 피로 회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봄나물에는 원기회복, 면역력 강화, 항산화 작용으로 인한 암 예방 등 우리 몸에 이로운 요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계절을 핑계 삼아서라도 섭취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한국식 봄나물 조리법

최근 한국 영화나 드라마, 예능 콘텐츠들의 인기에 힘입어 스크린에 드러난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해외 셀럽들이 김치를 즐겨먹거나 순두부찌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으며, 유튜브에서 김밥 말기나 김장에 도전하는 외국인들의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합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식재료는 물론 조리법에 이르기까지 그 관심의 영역이 더 깊어지는 분위기인데요, 최근 화제를 모은 요리 예능에서는 채식 중심의 사찰요리나 나물을 메인으로 한 안주, 서양식으로 조리한 봄나물죽 같은 나물 활용 요리들이 등장해 한국식 채식과 나물 조리법의 매력을 세계인들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공통적으로 나물요리가 발달해 있지만 조리법은 제각기 다른데요, 섬나라인 일본은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방식으로, 물이 귀한 중국은 채소를 기름에 볶는 조리법이 보편적입니다. 한국은 된장이나 고추장에 버무리는 조리법이 특징인데, 제철에 채취한 봄나물들은 기본적으로 맛과 향이 짙기 때문에 고유한 향을 해치지 않고 섭취하기 위해서는 양념과 조리를 간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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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돌나물, 참나물은 열을 가하지 않고 간장, 된장, 고추장만으로 가볍게 버무려 샐러드처럼 먹는 생채로 조리하면 나물 본래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고, 두릅과 고사리, 원추리 같은 독성이 있거나 질긴 나물들은 뜨거운 물에 데치는 숙채로 조리해 독성 제거 후 섭취해야 합니다.

봄에 채취해둔 나물들은 햇볕에 잘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채소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에 물에 불려 먹는데요, 이 묵나물 또한 봄나물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입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입니다. 식탁 위에 향긋한 봄나물 반찬으로 입안에 먼저 봄을 맞아보는 건 어떨까요? 나른했던 내 몸에 생기가 되살아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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