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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DATE2025.10.29
산분장, 자연으로 돌아가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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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명절 고향에 잘 다녀오셨나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고향의 따뜻한 정은 귀성길 정체와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달려가게 만드는 이유일 겁니다. 특히 명절에는 고향에 연고가 남아있지 않더라도 성묘를 위해 귀성길에 오르기 마련인데요, 미뤄두었던 조상의 묘소를 돌보고 주변에 웃자란 풀들을 벌초하며 차례를 지냅니다. 비록 얼굴을 마주할 순 없지만, 이렇게라도 그리운 이들을 추억할 장소가 남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후손들의 간절함이 만든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고인의 육신을 특정 장소에 모시고 후대가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장례 방법에 담았습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도의 타지마할과 같은 고대 건축물이 그러한 인간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반면, 바람과 물 같은 자연의 도움을 받아 육신이 소멸되게 함으로써 고인의 영혼이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풍장이나 수장 등 자연의 도구를 활용한 장례법이 이러한 마음을 잘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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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상반된 장례 방식이지만, 이는 모두 고인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담은 남은 자들의 바람이 담긴 의식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여러분이 생전에 스스로 장례 방식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정리하는 마지막 방법으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산분장의 합법화


지금까지 국내 장사법에는 고인을 묘지에 묻는 매장과 불에 태우는 화장, 화장한 유골을 땅에 묻는 자연장으로는 수목장이나 잔디장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이 장사법들은 모두 특정 장소에 고인을 모시고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 장사법으로, 전통적으로 유교를 숭상했던 한국사회에서 조상의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그 표지를 남겨 흔적과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장례 방식에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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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대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가족을 이루지 않는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고향에 남겨진 조상의 묘소는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듯 최근 30년 사이 장례 방법은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르게 대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화장 후 골분(뼛가루)을 모시는 납골당과 봉안시설마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정부가 골분을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산분장(散粉葬)을 자연장으로 포함시켜 합법화하도록 법을 개정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산분장의 장소와 방법


그동안 산분장은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어 불법도, 합법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산분장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그러나 2025년 1월 24일 개정된 장사법에 따라 산분장이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이제는 합법적으로 산분장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산분장이 아무 곳에서나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산분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구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바다에 뿌리는 해양장의 경우, 해안선에 5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골분이 흩날리지 않도록 수면 가까이에서 뿌려야 하며, 골분과 생화 외에 다른 유품들을 투기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이때 선박 통행로나 양식 등의 어업행위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바다가 아닌 강에서 산분장 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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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의 산분장 또한 가족·문중의 묘지나 화장·봉안시설, 자연장지에서 합법적으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이때에도 골분이 흩날리지 않도록 뿌린 후 잔디를 덮거나, 깨끗한 흙과 함께 섞어 골분을 뿌린 후 충분히 물을 뿌려 지면에 흡수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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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는 몸


이렇듯 산분장은 인간의 몸을 본래의 속성인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장사법이자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장례 방식으로 그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이 고인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우거나 단절시키는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함께하는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산분장은 자연의 순환 과정을 통해 고인과의 이별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산분장은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인 장례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제한된 토지 자원 안에 봉안 시설이 세워지다 보니 고령화로 빠르게 늘어나는 유골의 수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산분장은 유족들의 봉안당 확보 및 관리를 위한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후손들의 토지 자원 활용과 환경보호 면에서도 합리적이고 자연 친화적이며 지속 가능한 장례 방식으로 현대 장례 문화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분장은 여전히 가족이나 부모님의 흔적을 기릴 수 있는 아무런 시각적 표지가 없다는 점에서 유족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기는 장례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에게는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상징물이나 표지만으로도 상실의 슬픔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유족의 마음과 현실적 문제를 반영하여 최근에는 물리적 상징물을 최소화하는 대신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을 더 깊이 추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장례 문화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장례 문화


이 변화를 가속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 기술의 발달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면 장례가 축소되고 장례식 절차도 간소화되면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온라인 추모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은 디지털 공간에 남은 고인의 생전 모습과 음성, 메시지를 통해 언제든지 고인을 기릴 수 있게 됐고, 산분장 등으로 고인을 추억할 장소가 없는 유족들에게는 온라인 추모 공간이 마음의 위안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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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남겨진 유족 중심에서 자신의 장례를 스스로 준비하는 당사자 중심으로 장례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는 가운데, 산분장은 유족에게 자신의 흔적을 관리하는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고인의 배려가 담긴 장례 방식으로 선호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분장은 자신의 장례 방식을 미리 준비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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