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
조선 통신사의 섬에서 고양이들과 한가롭게,
아이노시마(相島)
글 / 사진 _ 길정현(여행작가)
팬데믹이 세상을 덮치기 전, 가장 만만하게 떠날 수 있던 곳은 일본이었다. 도쿄, 오사카 등 일본 대도시는 물론이고 ‘이런 곳에 직항 비행편이 있어?’ 할 정도의 지방 소도시까지 참 여러 번 일본을 오갔다. 어느덧 팬데믹은 종식됐고 비행편도 슬슬 재개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일본의 지방 소도시로 가는 비행편의 재개는 요원하다. 지방 소도시가 주는 여유롭고 잔잔한 일본 특유의 감성을 대도시 주위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그렇게 우리는 아이노시마를 찾았다.
CNN에서 선정한 세계 6대 고양이 명소 중 한 곳이자 ‘고양이섬’으로 통하는 아이노시마지만 사실 일본 내에 고양이섬이라 불리는 곳은 꽤 여럿이다. 그리고 그런 명칭으로 딱히 불리지 않더라도 고양이가 많은 섬도 은근 흔한 편이라 그런 곳들을 이전에 많이 다녀봤다면 아이노시마가 다소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후쿠오카에서 쉬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은 단연 최고다.
사실 우리에게 아이노시마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건 바로 ‘조선 통신사’와 관련이 있다. 아이노시마는 일본 본토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기착지 같은 곳이다. 조선 통신사는 400여년간 총 12번 일본을 방문했는데 그 중 쓰시마 섬까지만 갔었던 마지막 여정을 제외하고 총 11번의 왕복 여정 때 매번 이 섬에 들렀고, 지금도 선착장 근처에서 조선 통신사의 기착지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비석을 볼 수 있다. 관련 묘지와 객사 터 등도 남아있긴 하다. 섬 자체가 워낙 작아 사용 가능한 땅이 적다보니 객사 터는 이후에는 다시금 채소밭으로 회귀했지만.
아이노시마는 그 시절에도 주민이 3~400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었고 대부분은 소소한 규모의 어업과 농업에 종사했다. 이런 작고 평범한 섬에 조선 통신사 일행과 그들을 보필하는 일본 관계자들 등 1,000여명에 이르는 규모의 사람들이 들른 것이니 그 분위기가 어땠을지 가히 짐작이 가능하다. 한정된 물자 안에서 대규모의 사람들을 케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조선 통신사의 주요 인사 중 한 사람이었던 신유한이 적은 사행기록인 해유록(海游錄)에는 ‘통신사들이 도착하는 날, 네덜란드산 최고급 비단 양탄자가 깔리고 인조견으로 만든 등(燈)을 117개나 단 풍광이 어찌나 화려해 보였는지 우리의 초파일 등불은 중들의 조그마한 장난질처럼 여겨진다’고 기록되어있을 정도이니 엄청난 정성과 환대를 받았던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이에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K-한류가 있기 이전에 아이노시마가 있었다고!
낚시꾼들만 알음알음 찾던 이 작은 섬이 고양이섬으로 널리 알려지며, 이제는 도리어 낚시꾼들보다는 고양이에 관심있는 이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 섬의 고양이들은 사람 손을 너무(!) 타서 먼저 다가오고, 치대는 수준이 웬만한 집고양이 이상이다. 200여마리의 고양이들이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다가도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냉큼 달려온다. 다만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재빠르게 돌아서는 영악한 녀석들도 개중엔 있으니 너무 마음 상하지는 말자. 고양이들과 관련해 꿀팁을 하나 전하자면, 선착장에서 먼 곳보다는 도리어 선착장 근처와 물고기가 있는 도선 대합실, 어업 조합 근처 창고 뒤쪽 등에 고양이들이 많다. 섬 전체를 트래킹하는 것에 마음이 없다면 굳이 멀리 발품을 팔지 않아도 좋다.
주위에 길고양이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동네가 은근 있다. 아이노시마라고 그런 문제가 없을까? 이 섬의 고양이들 또한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대신 이 섬에는 이와 관련된 원칙이 있다. 의도적으로 고양이를 보살피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곳의 고양이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본래 아이노시마의 고양이들은 어업에 방해가 되는 쥐들을 쫓고,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물고기의 머리나 뼈 등을 먹고 생활하던 녀석들이었다. 이에 오래도록 섬 주민들과 자연스러운 공존이 가능했던 것. 적절한 무관심을 바탕으로 적절한 거리를 두되 서로를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받아들인 곳이 바로 아이노시마다. 간식이나 사료를 주지 않고 고양이들 스스로 먹이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니 우리도 이 부분은 지켜주자. 섬 주민들과 섬 고양이들이 예전부터 해왔던 대로,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는 마음만 있으면 딱히 어려울 일도 아니다.
섬 자체는 고양이 외에는 정말 별 게 없는데, 없어서 더 편안한 구석이 있다. 다만 먹을 곳도 엉덩이 붙일 곳도 마땅치 않다는게 최대의 단점. 섬 안에 식당이나 카페, 푸드 트럭 등이 소소하게 있기는 하지만 같은 배를 타고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이 곳에서 뭔가를 먹으려 하기 때문에 매번 긴 줄을 서야 하고 재료소진으로 Sold Out이 되는 일도 흔하다. 성수기 주말 같은 경우는 이미 첫 배가 들어온 시점부터 재료가 소진되는 경우도 있으니 마음 편히 식사는 섬 바깥에서 해결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섬 안에는 카드 사용이 가능한 곳이 없어 전부 현금으로 사용해야 하고 나가는 배표 역시도 현금으로 구매해야하니 현금 예산을 잘 짜두자. 자칫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섬 안에는 ATM도 없다는 점!
아이노시마 가는 법
- 후쿠오카 신구항에서 아이노시마까지 페리로 15~20분
- 요금 : 성인 480엔, 소인 240엔 (편도 기준)
*섬 내에 숙박 시설이 없어 나가는 배를 놓치면 노숙을 해야할 수도 있다. 반드시 주지하고 움직이자!
<아이노시마 → 신구항>
3월~10월 (7:00/8:40/10:50/13:50/16:00)
11월~2월 (5:30/7:00/8:40/10:50/13:50/17:00)
<신구항 → 아이노시마>
3월~10월 (7:50/9:20/11:30/14:30/16:40)
11월~2월 (6:10/7:50/9:20/11:30/14:30/17:40)
길정현 작가 :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후, 대한항공에 11년 째 근무하며 틈틈히 여행을 다니고,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고작 5일>, <그리하여 세상의 끝 포르투갈>, <프로방스 미술 산책>, <고양이와 함께 티 테이블 위 세계정복>, <미술과 건축으로 걷다, 스페인>, <1일 1면식>, <예술가와 네 발 달린 친구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