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탄허기념불교박물관
서울시 강남구 밤고개로14길
글 _ 김예슬 (작가)
이곳에 처음 갔던 건 판교에 있는 회사를 다니던 때였다. 집 앞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수서역을 지나 회사로 가는 게 당시 내 출퇴근길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 없던 출근 길 아침, 창 밖에 스쳐가는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언젠가 꼭 가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출퇴근길을 몇번 거친 후에야 반차를 내어 이곳으로 향했다. 일상 속 짧은 여행은 같은 길도 다르게 보이게 해주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드문드문 있는 주택 몇 채와 녹음이 가득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한참을 걸으니 길 맨 끝에 투명한 건축물이 보였다. ‘불교’하면 생각나는 전통적인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숲 속에 폭 들어가 있는, 저 멀리 보이는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은 갤러리처럼 보였다. 지금이야 수서역 주변에 높은 건물도 많이 지어졌고, 주변에 주택과 식당이 많이 생겨서 유동인구가 생겨 당시 풍경과는 조금 달라진 듯하지만 5년 전 쯤만 해도 주소는 분명 서울인데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동네였다.
지나고 나니 기억도 흐릿해졌지만 내게 직장 생활은 '고요를 찾아 떠나던 시절'이었다. 하루를 끝내고 나서도 ‘실수한건 없는지’ 늘 마음이 조급했고, 그래서인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자연에 고립되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부러워했다. 아마도 이토록 조용히 있기를 간절하던 마음이 나를 숲 한 켠에 있는 탄허기념불교박물관으로 이끈 게 분명했다.
탄허기념박물관을 멀리서보면 단조롭고 흔한 사각형 건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하 1층, 지상 3층 높이 건물로 꽤 규모가 있는 편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건물 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건물은 의미와 은유로 가득 채워져 있다. 건물 유리벽 외관에는 대승불교 경전 ‘금강경’이 서예체 한자로 쓰여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108개 철제 기둥을 왼쪽에 두고 경사진 계단을 올라야한다. ‘108’은 불교에서 중생의 번뇌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나지막한 오르막길과 짧은 계단이지만 절을 오를 때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신발을 벗고 마루 한 칸을 올라서서 본격적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이 눈에 띈다. 왼쪽부터 엘리베이터, 사무 공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맨 오른쪽에 강연을 할 수 있는 넓은 강연장이 있다. 밖에서 올려다본 금강경이 쓰여 있던 건물 벽은 다시 건물 내부의 벽이 되어 강연장을 채운다.
탄허기념불교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 이성관의 2012년 인터뷰에 따르면 ‘허공을 삼킨다’는 탄허스님 법명처럼 허공에 떠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살려 설계했다고 한다. 이런 많은 공간이 배치되어있는데 높은 천장과 투명한 유리 벽 덕분에 안팎 경계가 없어서 답답하지 않다. 이건 건축물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2층에서도 1층이 훤히 내려다보이도록 복층 형식으로 구성했고, 2층 벽과 벽 사이는 시선에 막힘이 없도록 터서 열린 공간을 표현했다.
2층은 전시실과 복도 맨 끝에 작은 법당 ‘붓다홀’에 위치해있다. 붓다홀 안에 있는 불상은 네모난 입구 중앙에 위치하도록 배치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액자 속에 들어있는 현대적인 탱화처럼 보인다. 설계자가 얼마나 세심한 마음을 썼는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런 점이 높게 평가되어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은 2010년 개관한 해에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서울시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이성관건축가는 전쟁기념관(1994), 양구전투기념관(2000), 여주박물관(2016)등 굵직하고 의미있는 박물관을 여러 차례 설계해본 건축가다. 박물관은 유물을 품고 있되 그 의미가 건물에서도 잘 전달되어야한다. 여러 건물용도 중 박물관을 여러 차례 지어본 건축가는 이 장르에서 장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층 전시관 공간은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전시관 공간 출입구는 긴 두루마리 문서처럼 곡선형이다. 철제 소재라 건물 출구에서 보았던 기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시공간에는 탄허스님의 자필문서, 편지, 소지품등이 전시되어있다. 붉은 톤으로 맞춰진 전시장 내 기둥은 승려 복식 중 회색 장삼 위에 걸쳐 입는 가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건축적 해석은 오답도 정답이다. 예술작품을 경험 안에서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듯, 건물을 섬세하게 관찰해보시길 추천한다. 108번뇌, 승려 복식 색깔, 불경... 비록 불자가 아니어도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는 불교 특징과 비교해보는 게 가능하다.
탄허스님은 스님이자 학자다. 유교, 불교, 도교 경전을 통달했고, 책을 80여권이나 집필했다. 부산 화엄사 회주 각성 스님과 조계종 전 교육원장 무비 스님, 지리산 칠불사 주지 통광 스님 등이 모두 탄허 스님의 제자라고 한다. 탄허기념불교박물관 건축주로서 건물 설립에 주축이 된 혜거스님 또한 그 중 한명이다. 이런 탄허스님의 업적에 맞게 강연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형태가 되길 바랐다고 한다. 실제로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은 명상프로그램, 전시뿐만 아니라 인문학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기천불(기독교, 천주교, 불교)’ 중 요즘 가장 뜨고 있는 종교가 불교라고 한다. ‘꽃스님’, ‘뉴진스님’으로 불교가 갖고 있던 종교 문화가 콘텐츠 화 되면서 젊은이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대학교 종교 동아리 가입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산 속에서 조용하게 명상하고, 수양하는 이미지를 벗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이다. 템플스테이를 형식으로 한 미혼 남녀들의 건전한 소개팅 프로그램인 ‘나는 절로(SBS 인기 프로그램 <나는 솔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별히 종교가 불교가 아니어도, 낯선 사람들과 여행을 즐기는 게스트하우스 문화가 종교와 만난 게 흥미롭다. 우리나라 역사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종교이면서 탈권위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는 불교.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은 불교가 갖고 있는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멀리 떠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적막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예슬 작가 : 휴가를 내지 않고도 주말을 여행자처럼 쓰기 위해 건축 여행을 시작했다. 2015년부터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 전국을 여행했고 1,000곳이 넘는 건물을 기록했다. 대학에서는 국문학과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서울의 근현대의 시간을 간직한 54곳의 건축 여행지를 담은 "서울 건축 여행"이 있다.